강원도 강릉시 정동진에 가면 모래시계가 있다. 한반도의 지형지세가 서해안 쪽은 대륙붕이 발달하여 완만하고 리아스식 해안선과 작은 섬들이 위치해 있어 풍광이 아름다워 웬지 친근하고 정감이 있다. 동해안은 동해의 푸른 바다가 응어리진 가슴을 탁 트이게 할 수는 있지만 아기자기한 맛은 덜하다.
지금은 정동진이 이미 유명해져 있지만 즈믄 해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새해 벽두에 일출을 보는 이들은 있었어도 폐항을 고민할 정도로 이름 없는 조그만 어촌 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황량한 어촌이 모래시계 하나로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강릉시는 포항 간절곶 보다는 일출이 다소 늦어 상징성은 덜하지만 한 세기가 바뀌는 세기적 변곡점에서 지나간 시간을 상징하는 모래시계를 즈믄 해에 설치하여 그 이름을 영리하게도 밀레니엄 모래시계라고 했다. 그 프로젝트는 적중했다. 사실 정동진과 모래시계는 의미를 부여해서 그러지 관련성이 없다. 모래시계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호리병 모양의 유리병을 상상하지 정삼각형과 역삼각형의 한쪽 모서리를 연결시키고 그 무게를 지탱하고 다시 거꾸로 세우는 작업이 용이하도록 원형 프레임으로 고정한 원 모양은 모래를 흘려 내려서 기능적으로는 모래시계라고 하지만 감성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다. 모래가 모두 내려가는데 1년이 걸린다고 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시계 Time Wheel(시간의 바퀴)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데 정동진 모래시계도 같은 모델이라고 한다. 정동진 모래시계가 유명해진 배경에는 드라마 ‘모래시계’가 있다. 1995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 모래시계는 1970부터 90년까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조명했는데 작가는 95년을 기점으로 과거 어느 기간 동안의 일이라서 제목을 ‘모래시계’라고 했던 것 같다.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평균 시청률 50.1%)를 함으로써 ‘모래시계’라는 명사가 사람들의 뇌리 속에 깊이 각인 되었고 추억이 되어질 쯤 5년 뒤 강릉시는 모래시계를 설치하였다. 그런데 전혀 의도 하지도 않았는데 그야말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흥행을 몰고 온 것이다.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을 바꾼 것이다. 정동진 모래시계는 전체 무게 40t, 모래 무게만 8t이며 1년 마다 거꾸로 뒤집는 행사를 하고 위탁운영을 하는데 모래시계 공원 운영비가 한해 평균 1억 6천여 만 원이 소요 된다고 하며 모래시계 건설비는 12억 8천만(삼성전자 기부체납) 원으로 당시로서는 무모한 투자였지만 관광을 다니는 사람치고 안 가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결국은 성공을 거두었고 관광객은 2017년 한 해 해변 포함 150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필자도 모래시계를 보러 갔던 건 아니지만 두 번 씩이나 갔다. 모래시계 모양을 보고 실망했다. 하필 그때 고장이 났던지 모래가 흘러 내리지도 않았다.
필자는 수 주전 지역 신문에 “청자축제의 꿈”이라고 하는 졸필을 기고 한 바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을 했는지는 알 수 없고 욕할 사람은 욕을 하시라고 전화번호를 남겼는데 아직까지 침묵하는 다수가 무섭다.
청자박물관 현관 로비 오른쪽에 1m 높이를 가진 비교적 큰 면적의 입체 관광안내 지도가 있다 버튼을 누르면 찾고자 하는 곳에 불이 켜지게 되어 있는데 이용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퇴직한 필자는 현역 시절부터 지금까지 위치를 안내할 용도라면 그렇게 많은 공간을 차지하면서까지 그곳에 위치시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 위치에다 2층 로비에서도 안쪽이 들여다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가 약 3m 정도 되는 ‘청자운학문매병’을 제작하여 설치한다면 청자박물관은 물론 이거니와 청자 본고장으로서의 위상과 품위를 단숨에 일신할 수 있고 또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모객효과가 대단히 클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현역 시절 그런 제안을 했더니 중력 때문에 성형 자체도 어려울뿐더러 성형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소성 과정에서 주저앉아 버린다고 어느 떠중이가 일축해 버리는 바람에 당시 필자는 달리 대항할 수 없었지만 지금껏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지금껏 유지하고 있다. 사실 필자는 공인된 자격증이나 요업에 종사한 적은 없지만 점토를 소성 할 때 점토 몸체에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공극의 모세관 현상을 이용한 천연 세라믹가습기를 개발하여 특허청으로부터 실용신안(특허) 등록을 필하고 현재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사업화를 추진 중에 있다. 외람되지만 도자기와 관련하여 일자무식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구의 중력 때문이라면 지름이 1m 정도나 되는 대형 접시를 만드는 것(윤도현 명인)이 매병을 만드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높이 3m 정도 매병의 경우 상부(어깨 부분)의 폭은 높이의 1/2 가량인 1.5m 정도가 될 것이다. 접시의 경우는 그 구조상 아래로 처지는 중력현상을 감소시키는 트러스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지만 매병의 경우는 원통형이므로 트러스트 효과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성형이나 소성 시 물리적으로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누구라고 거명할 수는 없지만 평소 청자와 관련하여 여러 얘기를 나누고 필자가 존경하는 관내 모 요업체의 대표께서는 크게 어렵지 않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필자의 주장이 현실과 동떨어진 막연한 감성적 소신이 아님을 전문가가 증명한 셈이다.
물론 어려울 것이다. 성형과정 부터 그 무게를 견디고 회전할 수 있는 전용 물레를 별도 제작해야 하고 몸체가 크기 때문에 코일링 기법으로 쌓아 올릴 수밖에 없는데 그에 따른 특수 사출기를 고안해서 장치해야 하며 성형에 성공하더라도 단시간에 조각을 해야 하지만 작업량이 많아 혼자서는 어렵고 여러 사람이 공동 작업을 하면 문양에서 차이가 나는 등 어려움을 예상할 수 있다.
가마도 별도 전용 가마를 만들어야 하고 시유도 기존의 침수 기법은 불가하니 별도의 분부 방식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연구해야 가능할 것이며 더구나 청자 박물관의 인력만으로 별도 T/F 팀을 꾸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중에서 제일 큰 문제는 집행부와 의회의 의지와 인식의 크기가 문제라고 본다. 단번에 제작에 성공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수번의 시행착오를 겪을 터인데 소요되는 비용을 장래를 향한 투자로 보지 않고 예산 낭비라고 생각한다면 강진의 모래시계는 없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갈수록 청자축제는 매너리즘에 빠져 들고 있다. 무언가 독특하고 기발한 모멘텀이 필요한 시기다.
필자의 제안대로 거기 그 자리에 그런 초대형 청자매병을 장치하여 전시한다면 청자를 잘 모르는 사람은 우선 그 크기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찾을 것이고 청자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그건 도저히 만들 수 없는데 어떻게 만들었지 하는 의문이 들어 찾을 것이며 감탄할 것이다. 필자는 성형 과정에 필요한 기계장치와 설비에 관한 설계를 이미 머릿속에 두고 있다. 당국이 결심한다면 미력이나마 도울 용의가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너무 진부하고 도전하는 자는 숙명적으로 성공과 실패라는 두 짐을 한 몸에 져야한다. 때문에 무겁다.
정동진 모래시계는 남의 것을 그대로 모방했고 매년 수억 원의 운영비가 들지만 미래의 강진 모래시계는 초기 제작비용만 들뿐 운영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투자 가치가 있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서 의미가 있다. “강진에 가면 세계에서 제일 큰 청자가 있다” 참으로 멋진 상상이다.
[본 기사는 강진우리신문의 공식 견해가아님을 밝힘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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