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에 큰 바람이 휘몰아쳤다. 억눌린 사람마다 가슴 속 사무치던 바람이고 온 나라의 무명적삼이 주도한 죽창봉기, 동학농민혁명의 바람이었다. 1894년 12월의 강진에도, 옆 동네 장흥에도 그 마지막 들불이 번지다가 왜의 토벌군에 짓밟혀 사그라졌다. 그로부터 125년, 우리 시대의 정부는 동학농민군이 황토현에서 싸워 이긴 날(5월 11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다.
그 해의 바람을 재조명하려는 후예들의 노력이 빛을 본 것이겠다. 이 곳 강진에서도 뒤늦었음에 화답하는 움직임이 있다. 기억의 지푸라기 하나라도 길잡이 삼아 희미한 강줄기를 거슬러 오르기 바란다. 감춰둔 사연을 드러내고 뒤틀린 진실을 바로잡는 일, 그럼으로써 역사의 균형을 올바르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뭔 소용이냐고, 덧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실 누군가도 있겠다. 말문이 오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희미해진, 그래서 딴사람 다리 긁듯 무덤덤해진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유족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원망일까, 자부심일까? 수많은 사연들이 침묵과 수군거리는 틈의 먼지로 쌓여갔을 것이다. 하여, 알량한 명분과 노력이 무망해질 수도 있다.
몇 세대의 먼지를 거두어 재구성하기보다 소설쓰기가 오히려 쉬울 테니까. 그렇지만 더 미룰 수 없다. 남은 파편이 부스러지기 전에 채록해야 한다. 이 땅의 어느 산골, 물골에 잠긴 혼백을 위로하고 명예스럽게 해드리는 게 살아있는 이들의 몫이고 의무다. 두 달 전 장흥군청 앞마당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다녀왔다. 군청 입구 댓돌엔 ‘義鄕’이라 새겨져 있고, 오래된 역사 이야기가 글과 그림으로 피어올랐다. 좋았다. 소주를 먹고 마주한 석대들 밤공기는 차갑고 쓸쓸했다. 김남주 시인의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를 연대시로 낭송하던 시절이 스쳤다. 예나 지금이나 바를 正, 옳을 義, 이 두 글자 앞에 아닐 不가 얹히면 정치와 백성이 갈라선다.
좌절당한 “폭도”들과 그 가족의 2차 피해 또한 극심했음을 지역 사람들이 모를 리 없지만, 껍데기를 바꿔 정치권력에 기생한 무리들이 온갖 기만과 왜곡으로 정당성을 훼손한 탓에 이만큼의 시간이 지난 것이다. 끝나지 않았다. 고결한 혁명은 존중받아야 한다.
역사인식이란 늘 무겁고 부끄럽다. 썩어빠진 붕당세력이 망친 나라! 조선의 노론과 친일파는 아직도 건재하다. 민심분열과 여론호도를 일삼는 불량정치의 망령도 여전히 살아있다. 나라꼴이 그렇다. 정치하는 자들이 백성을 두려워하고 온 나라 민초들이 스스로 정의로워야 역사의 뼈마디가 힘을 얻는 것이다.
부패·무능한 탐관오리와 조정을 겨눈 깃발은 비록 스러졌으나 염원은 계승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해 오뉴월 어느 무덤가 삐비꽃이 겨울 벌판의 눈꽃으로 되살아 선혈을 덮어주던, 그 처절하게 어여쁜 삶의 무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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