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의 가족사랑 하피첩(霞帔帖)

  • 진 규 동 박사 다산박물관 다산교육전문관



  • 새로운 인생 3막을 시작하면서 홀로 다산의 유배지에서 축복 받은 유배살이를 시작한지 어언 2년이 되었다. 가족과 헤어져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름의 목적이 없는 한 쉽지 않은 여정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그래서 18년 유배라는 시련과 고난의 세월을 다산은 과연 어떻게 보냈을까가 늘 궁금했다. 그래서 다산의 학문적 연구 결과물들과 흔적을 찾고, 보고, 느끼고, 배우며 지내다보니 2년 이란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이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 전 다산의 유배 18년, 인고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가를 책으로 엮고 있다. 다산은 시련과 고난의 유배살이의 원동력은 손닿는 곳에서 늘 찾고 느끼고 글로 써가며 유배의 분노와 울분을 학문적 열정으로 승화 시켰다. 다산은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 심지어 자연까지도 유배살이에 위로와 힐링으로 삼았다. 그 가운데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다산의 하피첩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다산의 가족사랑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을 적에 병이 든 아내가 헌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는데, 그것은 시집올 때 입는 활옷으로서 붉은빛이 담황색으로 바래서 글을 쓰기에 알맞았다. 이리하여 이를 재단, 조그만 첩을 만들어 손이 가는 대로 훈계하는 말을 써서 두 아이에게 전해 준다. 다음 날에 이 글을 보고 감회를 일으켜 두 어버이의 흔적과 손때를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그리는 감정이 뭉클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하피첩(霞帔帖)’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이는 곧 붉은 빛깔의 치마라는 홍군의 전용된 말이다. 가경 경오년(1810년, 순조 10년) 초가을에 다산의 동암에서 쓰다.”
        - 하피첩에 제함, 다산시문집 제14권

    결혼 34년, 유배 당한지 8년, 다산이 강진읍 내에서 8년을 보내고 다산 초당에서 본격적으로 제자들과 학문적 연구에 몰입하고 있을 때이다. 처자식들도 잊고 이제는 어느 정도 현지에 적응하고 있을 무렵이다. 다산초당에서의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며 책을 저술하는 것으로 유배의 우울한 먹구름을 걷어내고 있었다. 이때 남양주의 아내가 시집올 때 입는 붉은빛이 담황색으로 바랜 치마를 보내온 것이다. 다정한 행복을 약속했던 결혼식 때 입었던 노을 빛 바랜 치마였다. 홍씨의 첫사랑의 징표인 결혼예복이었다. 다산은 빛바랜 치마를 바라보며 지나온 세월을 되새겨보며 아내의 사랑이 깃든 치마로 얼굴을 감쌌다. 그러면서 다산은 빛바랜 치마폭을 글쓰기에 알맞게 첩을 만들어 아이들의 상처를 감싸는 첩으로 만든 것이다. 애비 없는 자식들을 걱정하며 사랑의 가르침을 담은 글을 써서 보낸다. 잊으려 해도 잊지 못할 시집올 때의 아내의 모습을 떠 올리며 하피첩을 만들어 자식들을 위해 글을 써 보낸 것이다.
    선비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남에게 베푸는 삶의 가치, 삶을 넉넉하게 만들고 가난을 구제하는 방법, 효와 우애의 가치 등을 담아 보낸 글이다. 폐족으로 자포자기 할까봐 노심초사하는 애비의 마음을 담아 보낸 간절한 글들이다. 그리고 딸에게도 붉은 치마 자투리를 남겼다가 매화가지에 두 마리 새를 그려 시집간 외동딸에게 선물을 했다.  “매화병제도”로 두 마리의 새는 한쌍의 부부로 외동딸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기원하면서 그려 보낸 것이다. 외동딸은 강진의 제자 중 한명인 윤창모와 혼인하였다.

    훨훨 새 한 마리 날아와     翩翩飛鳥 
    우리 뜰 매화나무에서 쉬네 息我庭梅
    진한 그 매화 향기에 끌려   有烈其芳
    반갑게 찾아 왔네           惠然其來
    이곳에 머물고 둥지 틀어    爰止爰棲
    내 집안을 즐겁게 해줘라    樂爾家室
    꽃은 이미 활짝 피었으니    華之旣榮
    토실한 열매가 맺겠네       有賁其實
                              - 다산 매조도

    하피첩은 본래 4첩이었으나 3첩만 전해진다. 3첩 중 1첩은 박쥐 문양, 구름 문양이 그려진 푸른색 종이가 표지로 사용됐고 2첩은 미색의 표지를 갖고 있으나 3첩 모두 붉은색 면지로 되어있다. 하피첩은 다산의 후손에게 내려오다가 6·25전쟁 때 분실돼 행방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2004년 수원의 한 건물주가 폐지 줍는 할머니의 폐품 속에서 발견하였다. 그 후 2015년 9월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된 것을 국립민속박물관이 7억 5,000만원에 낙찰 받아 소장하고 있다. 유배지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는 다산, 그도 평범한 아버지였고, 남편이었다. “언제쯤 침방에서 아름다운 만남 가질까. 그리워 않노라, 그리워 않노라, 슬픈 꿈속의 그 얼굴”이라며 잊지 못할 아내와 가족을 그리는 다산의 모습을 가정의 달 5월에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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