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16일, 국제무역도시로 유명한 일본의 고베의 한신공업지구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던 중 효고현(兵車縣)의 지역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일본 효고현(兵庫縣)의 아와지시마(淡路島)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정행남(鄭幸男.76)씨가 있었다. 그는 어린나이에 도쿄로 나와 사업에 성공했고 자신이 자랐던 모교 토시마(富島)초등학교에 30년간 매년 도서구입비로 20만엔(한화 200만원)을 보냈다. 정(鄭)씨는 해방 전인 1941년생으로 해방 후,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부모는 토목작업, 고철업, 양돈 등으로 생계를 꾸려 왔지만, 13세 때에 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한 가정의 기둥을 잃고, 빈곤 속에서 6남매를 위해 정(鄭)씨는 13세에 견습생으로 일을 배우러 나섰다. ‘고생에 고생, 눈물에 눈물’의 나날이었다고 한다. 고생을 발판삼아, 도쿄(東京)로 나와 사업에 성공한 후 읽기, 쓰기, 계산 ‘인간으로서의 기초’를 가르쳐 준 모교에 은혜를 갚고 싶다고 생각해, 그 당시 좋아하던 책을 살 수 없었던 아픈 기억을 후배들한테 맛보게 하고 싶지 않아 도서구입비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후 매년, 교육위원회를 통해 20만 엔을 보내왔다고 한다. 설립한 회사에도 「아와지(淡路)총업」이라고 이름 붙였을 정도로 정(鄭)씨의 아와지시마(淡路島)에 대한 생각은 남다르다. 학교 측에서는 이런 정(鄭)씨의 생각을 실현하고자 아동전용 도서를 구입해 「타니가와(谷川)문고」로 이름 붙여 2층 도서실에 설치했다. 지금은 장서가 4118권을 헤아리며 호쿠단(北淡)지구(地區)의 7개 초등학교 가운데 가장 훌륭한 도서시설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정(鄭)씨가 모교를 방문하는 것은 졸업 이래 50년만의 일로 오카이치(岡一秀)교장을 비롯 선생님들과 78명의 아동, 호쿠단히가시(北淡東中校)중학교의 학생, 부모, 졸업생들 300여명이 몰려들어 아와지시마(淡路島)에서의 정(鄭)씨 일가의 생활이나 고생담을 들으며, 정(鄭)씨의 자선활동에 큰 박수를 보냈다.-고베신문 2003.7.16.일자 신문기사 편집자 재인용
2003년 우연히 읽은 일본의 신문기사에서 ‘정행남’이라는 세 글자만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정행남’이라는 이름도 함께 떠올랐다. 전남 강진군 작천면 작천초등학교의 [정행남 도서관] 요즘은 시간이 정말 기억할 틈도 없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는 듯하다.
누군가 말하길 세월의 속도는 자신의 나이를 헤아리는 숫자만큼 이라더니 처음 시간을 인식한 그 순간부터 지금 나의 세월의 속도는 지금 내 나이의 속도로 흘러버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 유년시절의 절반을 차지했던 시골의 작은 도서관의 이름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작천초등학교에는 정행남이라는 이름의 도서관이 있었다. 그 곳은 기억하는 나는 수많은 활자들이 오래된 도서관에 너풀너풀 떠다니고 낡은 책들이 뿜어내는 고목의 향기를 품은 책들이 전쟁 후 지어진 이래 60년의 세월을 버티며 5만권의 장서를 품은 채 건재한 곳이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당시만 해도 한 학년의 수가 적어도 50여 명은 되어 남탕·여탕 분리된 2개 학급은 운영이 됐었다. 훗날 나는 명절 휴가를 맞아 학교 운동장을 찾아 가 본 적이 있었다. 아침 조회시간 ‘관내 물 빠짐이 좋은 모래 운동장을 가진 학교는 우리학교 유일하다며 자랑하시던 교장 선생님 목소리도 퀭한 느낌으로 돌아와 텅 빈 학교 운동장을 보고 괜한 쓸쓸함이 밀려왔던 기억이 있다 . 지금은 폐교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니......격세지감이랄까. 당시에도 학생 수에 비해 도서관의 크기가 더 컸던 발 디딜 틈 없이 바닥에까지 책이 쌓여 있던 정행남 도서관은 무려 5만권의 장서를 보유했던 작은 시골초등학교 도서관이었다. 이 도서관에 책이 들어오는 날이면 한 학년 전체가 트럭에서 내려지는 책들을 일렬횡대로 서서 나르곤 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많은 책들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던 소임을 담당했었다. 당시 도서관은 항상 열려 있어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기 일쑤였다. 그런데 수업시작을 알리던 종소리는 너무 일찍 찾아왔고 다음이 궁금한 책 페이지는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종종 담임선생님은 주번을 통해 나를 찾으러 보내곤 했었다. 아마도 난 그 도서관 낡은 창문에 석양에 물들어 멋진 장광을 만들어내는지 헤아려 본이가 얼마나 됐을까? 월출산을 넘어가는 태양의 시간을 붙잡고 싶은 11살의 내 마음이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사람에 더 가까워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종종 나는 일을 하는 중 외부에서 글 한편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곤 한다. 어느 곳은 간단한 에세이를 또 어느 곳은 글로벌 현안이슈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그런 어느 날 글로벌 보험사의 국내 사보에 실을 글 한편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라고 물으니 담당자의 답변은 ‘당신은 어떤 이유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까?’ 라고 답했다. 막상 내가 왜 글을 쓰게 됐었을까? 라고 생각하니 바로 답변할 수 없던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내 기억 속에 ‘정행남 도서관’이라는 초등학교 도서관의 책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그 도서관의 기억을 몇 글자 적어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해당 사보를 읽었다는 보험설계사 한분으로부터 이메일을 하나 받게 되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본인이 다니는 용산의 치과병원의 이름이 ‘정행남치과’인데 분을 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분을 통해 나는 반신반의하게 치과병원의 연락처를 받고 ‘밑져야 본전’ 혹시나 그분일까? 하고 수화기 버튼을 눌렀다. 신호발신음이 들리고 나는 몇초의 시간에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평소 이성적이지 않은 나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밝고 명랑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간호사였다. 나는 전화건 목적을 간단히 설명하고 조심스레 혹시 원장님께서 전남 강진군 작천초학교 졸업하시지 않으셨나요? 라고 물었다. 맞아요 나는 작천초등학교 졸업했어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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