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용 전기와 농업용 저온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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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어느 유명 교수가 학생들에게 본질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며 주머니에서 10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이거 갖고 싶은 학생 손들어 보라’ 했더니 강의실에 있던 학생 전체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지폐를 꾸깃꾸깃 구기더니 이래도 갖고 싶냐고 했더니 학생 전체가 갖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는 지폐에 침을 뱉고 바닥에 던져 놓고 더렵혀져 땅에 버려졌는데도 갖고 싶냐고 했더니 모두 예~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다. 버려진 10달러짜리는 구겨지고 더렵혀져 바닥에 버려졌지만 10달러에 대한 가치와 본질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내 일부 시군에서 농사용 전기를 사용하는 저온저장고에 김치 등 가공식품을 보관했다는 이유로 한전으로부터 ‘과징금 폭탄’을 맞으며 농촌지역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농업용 저온저장고에 일반용 전기요금을 적용받는 장아찌와 같은 가공식품을 보관했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이는 현재 농업·농촌 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처사라 할 수밖에 없다. 

    단순영농만으로는 안된다며 복합영농을 부르짖은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현재 정부는 농촌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농업의 6차 산업화를 강조하고 있다. 모든 농산물이 그러하겠지만 밭떼기나 거간꾼에 헐값에 넘기기보다 유통조절이나 1차 가공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 농촌에 보급하고 있는 저온저장고 지원사업의 본질이다.

    강진군만 하더라도 2023년 본예산에 농업과 임업, 축산 및 어업 분야에 저온저장고 시설사업 지원으로 5억5천만 원이 반영되어 있다. 강진군에 11억여 원이 투자되어 200여 동의 저온저장고가 행정기관의 지원으로 설치되는 것이다. 

    농어업용 시설인데도 마늘양파저온저장고, 다목적소형저온저장고, 농산물소형저온저장고, 꿀벌저온저장고, 수산물다목적저온저장시설, 수산물저온저장시설, 임산물소형저장고 등 사업 명칭도 각양각색이다. 

    이들 저장고에 허용된 품목만 저장할 수 있다면 과연 사업신청자가 몇 농가나 될까, 또 이를 무시하고 가공품을 저장할 수밖에 없는 현실속에서 단속에라도 걸리면 군이 혈세를 지원해 군민을 범법자로 만드는 우스운 꼴이 된다.

     

    농업인이란 농업에 종사하는 개인을 말한다. 농지법에서 농업인의 범위는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논에 농약치러 나가면 농민이고 버섯 재배사에 버섯 따러 가면 임업인이고 마을 앞 바닷가에 나가 어패류나 고기를 잡아 팔면 어민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를 통털어 농림어업인 또는 농업인이라 부른다. 

    그래서 한 가족임에도 아버지는 농민, 어머니는 어민, 아들은 축산인, 며느리는 상인이 되기도 한다. 저온저장고 지원은 이들이 생산한 쌀, 버섯, 조개 등을 저온 저장하여 신선도를 유지해 좋은 가격을 받고 1차 가공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여 농업인 소득을 높이려고 혈세를 지원하는 게 그 본질아니겠는가. 

    농사용 전기요금은 일반용 전기요금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지만 가공하지 않은 상태의 농작물이나 단순 가공한 농산물만 저장할 수 있다는 전제는 잘못되었다. 무나 배추는 되지만 장아찌나 김치 젓갈은 안된다면 본질을 외면한 것이다. 

    10달러짜리 지폐가 구겨지고 땅에 버려지는 순간 그 가치와 본질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농산물이 공산품처럼 연중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계절에 따라 편차가 있고 1차 농산물이 생산되지 않은 시기에 일시적으로 1차 단순 가공 농산물을 보관하는 것은 서두에 말한 10달러짜리 지폐가 그 가치를 잃지 않은 것처럼 농산물이라는 본질을 잃지 않고 보관되는 것이다. 

    적자에 허덕인다는 한전의 입장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농촌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는 지역의 영세 농어업인을 보호하기 위한 농업용 전기에 대해 교과서적인 단속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법률에도 단서 조항이 있고 예외 조항이 있다. 

    물론 농사용 전기혜택을 받으면서 1차 가공을 포함한 농수산물과 관계없는 가공품 또는 농업용이라는 본질을 벗어난 상업용으로 사용되거나 제3자에게 임대하여 수익을 취하는 등의 본질을 벗어난 목적 외 사용자에 대해서는 단속과 처벌은 필요하다. 그런 사례를 일벌백계하면 될 일이지 가스비, 전기료 폭탄 인상에 의기소침해 있는 대다수 선량한 서민 농어업인을 더 움츠리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최근 도의원과 농민회가 한국전력공사를 방문해 한전의 ‘기본공급약관’에 의한 저온저장고에 쌀, 김치 등 가공품 보관금지는 농업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임을 지적했다고 한다. 

    한전도 이를 인정하고 저온저장고 사용 품목 확대 등 농사용 전력에 대한 농업인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제도개선에 노력하기로 했다고 한다. 제도개선 전까지는 농사용 전력(저온저장고, 건조기)에 대한 단속과 계도를 일시 중지하기로 했다니 다행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는 말이 있다. 

    농사용 전기는 쓰되 농업용이라는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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