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의 얼이 서린 칠량 벽송행복마을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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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21일 저는 칠량면사무소 직원들과 함께 전재영 면장님을 모시고 제6회 동백골한옥 벽송행복마을 공동체 문화예술 축제에 참여하였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2년 만에 열리는 이번 축제는 벽송마을에서 태어나신, 한국 근현대사의 큰 인물 윤한봉 선생과 김성권 선생의 얼을 기리는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김보미 강진군의회 의장님, 유경숙 강진군의회 부의장님, 김학동 문화관광실장님 등 강진군과 군의회 대표자들이 이번 축제에 축하해주었습니다.

    이번 행사의 주인공인 윤한봉 선생과 김성권 선생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윤한봉 선생(1947~2007)의 일대기는 윤한봉 선생의 호(號)인 합수(合水)에 함축적으로 있습니다. ‘합수’의 의미는 똥과 오줌이 섞인 거름물이라는 의미로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민중과 더불어 살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1947년에 태어나, 그의 나이 불과 25세였던 1972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선포에 반대하면서 본격적인 반독재투쟁에 나섭니다. 그 이후 함평고구마사건, 들불야학 사건, 전국농민쌀생산자대회 개최, 전남민주청년회의회 활동, 그리고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 투신합니다. 

    그 이후 미국 망명생활에도 조국을 잊지 않고, 그가 주도한 재미한국청년연합은 어려운 재정상황에도 불구하고 1년동안 5·18광주민중혁명 기념사업 및 위령탑 건립추진위원회에 7,000만원을 보내기도 합니다.

    청암 김성권 선생(1926~2008)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고법 예능 보유자입니다. 

    1943년 그의 나이 불과 13세에 국창 김채만의 수행고수이며 아버지의 외숙인 박선행으로부터 북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6·25전쟁에 참전한 이후 1946년 박선행에게 판소리 고법를 사사받으시고, 1946년 정응민에게 판소리 심청가를 사사받습니다. 

    1955년 성원목에게 판소리 고법를 사사받습니다. 김성권 선생은 1982년 한국국악협회에서 국악공로상을 받으시고, 1986년~2003년 전라남도 도립남도국악단 고수를 맡으십니다. 

    1991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고법 보유자로 지정받으시고, 2005년 동리대상을 수상하시는 등 청암 김성권 선생은 호남을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수(敲手)이셨습니다.

    이번 행사에 아쉽게도 윤한봉 선생을 기리는 합수기념사업회에서 그 날 출장이 있으셔서 합수 윤한봉 선생에 대해서는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칠량 벽송마을에 청암고법보존회에서 행사에 참여하시어, 벽송이라는 조그마한 시골마을에,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님이신 김동현 선생의 사회로 대통령상을 받으신 주소연 선생, 박정아 선생, 김다정 선생 등 구성찬 소리꾼의 판소리와 이번 행사를 기획하신 국가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예능 보유자이신 박시양 선생과 그의 제자 김준영 선생의 고수의 고법이 서로 어우러졌습니다.

    춘향가, 적벽가, 심청가 그 중에도 특히 이번 축제에 참여하신 모든 고수와 소리꾼이 참여한 남도민요의 멋진 화음에 저는 ‘판소리와 고법의 진정한 멋이 이것이구나’라고 느끼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년에는 합수기념사업회에서도 축제에 참여하시고, 공연이 끝나고 김동현 선생께서 언급하신대로 내년에는 동백골한옥 벽송행복마을 공동체 문화예술축제가 군 단위 축제가 되길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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