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성을 잃어버린 한글의 혼혈화를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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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이란 이름으로 우리 말을 창제하여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다. 1446년 한글이 발표될 때에는 28자였으나 현재는 기본자음 14자와 기본모음 10자로 구성된 음소문자이다. 

    한글은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 뜬 자음과 천지인의 모양을 본뜬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적인 음운학 연구를 토대로 누구나 습득하기 쉽게 만든 독창적인 문자이기도 하다.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들 중에서 창제자와 창제년도가 명확히 밝혀진 몇 안 되는 문자이고 그 창제 정신이 ‘자주, 애민, 실용’에 있다는 점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창제 정신과 더불어 제자(制字) 원리의 독창성과 과학성에 있어서도 뛰어나다는 한글이 수난을 겪고 있다.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로 한다는 표준어 개념도 흔들리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거리낌 없이 사용되는 언어가 sns를 통해 확산되고 청소년들 사이에 은어, 속어, 줄임말 등이 일상화되면서 순수 한글보다는 백의민족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몽고반점이 증명하는 것처럼 이미 혼혈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TV, 라디오, 신문 등 우리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대중매체는 대중의 언어문화를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지도하는 순기능적인 면도 있지만 이와 반대의 역기능을 불러오기도 한다. 

    요즘에는 행정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조차 억지춘향식의 낱말조합이나 영어 또는 한자어를 삽입한 문구로 만든 홍보물을 거리낌 없이 내걸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고유 한글로 써도 되는 글귀에 억지춘향식으로 한글 단어에 영어 또는 한자를 넣는 창작 글자를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낱말들이 한글맞춤법에 맞지 않아 어린아이가 부모로부터 초보적인 말을 배우는 것처럼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한글 ‘~에’는 국문법상 부사로써 체언 뒤에 붙여 쓰는 조사임에도 그 자리에 체언격인 한자나 영어를 넣은 단어나 문장을 만들어 왠지 부자연스러운 단어를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바다 정화캠페인에 ‘함께 海요, 깨끗 海요’라는 표기는 억지같지만 바다를 연상할 수는 있다치지만 조사 `~에‘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한자어 ’애(愛)‘를 넣은 문구는 ’~에‘ 는 ’~애‘로 써도 된다는 묵시적 합의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모 침대회사의 광고문구에 익숙해진 초등학생들이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을 묻는 선다형 문제에 대다수가 침대를 정답으로 적었다는 에피소드를 연상하게 되는 것이다. 

    한글은 상형문자인 한자와 달리 표음문자이기에 길거나 짧게 함에 그 뜻이 달라지고 띄어쓰기 하나에 그 의미가 전혀 다른 말이 된다. ’동시흥 분기점‘ 이정표를 잘못 붙여 쓰면 ’동시 흥분기점‘이라는 엉뚱한 의미의 낱말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핸드폰 보급과 sns가 확산되면서 청소년들이 즐겨쓰는 줄임말도 한글을 혼란스럽게 하는 한 요인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따라하지 않으면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하다), 낄낄빠빠(낄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돈쭐(돈으로 혼쭐내다),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 등의 단어를 기성세대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바쁜 세상에 한 글자라도 더 줄이려는 노력은 이해되지만 이러다가 줄임말에 익숙하지 못한 기성세대는 손자 손녀와 문자 소통도 어려워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직업공무원을 늘상 공무원이란 뜻의 ‘늘공’, 선거 등에 의해 어쩌다 정무직 공무원이 된 것을 빗댄 ‘어공’이라는 표현은 사회풍자적인 의미라도 있지만 즉시 삭제 또는 자진 삭제를 의미하는 즉삭, 자삭은 선뜻 와 닿지도 않는다. 

    내 집 강아지 내가 발로 차면 지나가는 나그네도 발로 차고 간다는 말이 있다. 한글의 우수성을 말로만 강조할 게 아니라 국민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지켜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마을이라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습관적으로 ‘부락’이라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부락민이라는 용어는 17세기 일본 도쿠가와 막부시대 때 민중 지배 정책으로 ‘부락’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후 일제 식민지 시대에 조선총독부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을 천민 취급하려는 의도로 ‘부락’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한데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행정기관에서 돌다리, 새터, 진밭, 노루목, 감낭골, 금모래 마을 등 선조들의 지혜와 지역 특색을 가늠할 수 있는 마을 고유의 한글 이름을 되찾기를 추진하는 것도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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