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그리고 제자 황상, 황경 -기록으로 남기다-

  • 2021년 완도군에 거주하시는 황한석 님께서 강진군 다산박물관에 다산의 제자가 쓴 소중한 책 28권을 기탁해 주셨다. 

    이 책들은 다산선생님이 강진 사의재에 기거하실 때 가르친 제자 황상의 치원총서 12권, 치원일초 1권, 문선 1권과 황경의 양포일록 12권, 흠흠신서 2권 총 28권의 유물이 그것이다. 이 책이 빛을 발하게 된 계기는 2018년 한양대 정민 교수가 황상에 관한 책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소장자인 황한석 님께 한달음에 달려가 자료를 살펴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정민 교수는 당시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책상 위에 수십 책을 한꺼번에 펼쳐놓자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 감흥을 상상해 보니 절로 미소가 난다.

    강진군에서는 2018년부터 소장자와 구매를 진행하여오다 기탁을 거쳐 드디어 올해 구매 협의 완료되어 강진군 다산박물관이 소장하게 된 귀중한 유물 중 하나가 되었다. 저자인 황상은 다산의 강진 유배 시절 사의재에서 기거하던 시기인 1802년에 가르쳤던 제자 중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양반이 아니어서 과거를 볼 수 없는 신분이었기에 다산은 황상에게 시를 짓도록 가르쳤다.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난 후에 지은 『설부 雪賦』라는 시는 다산을 놀라게 했으며, 이후 그가 지은 시가 흑산도에 유배된 형 정약전에게도 전해져 크게 감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1808년 스승이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는 생계를 잇기 위해 농사를 지으며 가끔 홀로 옛 시를 읽으며 공부하였다. 아버지 황인담(黃仁聃)은 술병으로 일찍 죽었으며 이에 황상은 시묘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다산이 귀양 해제되어 서울로 돌아간 후 말년에는 대구면 용운리에 일속산방(一粟山房:좁쌀 한 톨만 한 작은 집)에서 스승의 가르침대로 부지런함을 실천하며 시를 지었으며, 1863년에 사망하였다. 남긴 저서로는 경기도 남양주시 실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치원유고』와 다산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치원소고』, 『치원진장』, 1권으로 엮은 『치원총서』, 『치원일초』, 『문선』, 12권으로 엮은 『치원총서』등이 있다. 

    올해 강진군 다산박물관이 소장하게 된 『치원총서』 12권은 다산이 직접 책 제목을 써준 것으로 보이는 3권을 포함하고 있어 더 눈길을 끈다. 

    이 문집은 황상이 만년에 편집하여 필사한 총서이다. 읽어야 할 책 전체를 필사하거나 아니면 필요한 내용만을 뽑아서 베껴 총서로 제작한 것이다. 이 자료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의 학술 가치가 있다. 첫 번째 치원총서는 다산학단의 공부 방법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두 번째는 황상의 학문 깊이를 알려주는 자료이다. 치원총서를 통해 황상이 어떤 서적을 중요하게 여기고 가치를 부여했는지 알 수 있다. 

    치원총서 중 택리지의 경우 수많은 택리지 필사본에 비해 새로운 구조와 내용을 지니고 있어 황상의 학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2018년 택리지를 번역 출간한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황상 택리지는 절록이라는 표현으로 인해 일부를 발췌한 사본으로 예상하기 쉽지만, 3분의 1 정도는 원저작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내용으로 채웠다. 그 어떤 사본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구조와 내용을 지녀 황상의 독자적 저술로 간주해도 좋다"고 평가했다.

    또한 “황상 택리지는 이중환 택리지와 구성이 완전히 다르다. 일반적인 택리지는 팔도론(八道論)이 앞에 나오고 복거론(卜居論)이 뒤에 등장하지만, 황상은 복거론을 먼저 쓰고 팔도론을 뒤에 붙였다. 아울러 팔도론 순서도 국토 변방에서 중심으로 서술한 이중환 체계를 부정하고, 경기도부터 외곽으로 서술해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복거론의 네 가지 기준인 지리, 생리(生利), 인심, 산수를 지리, 생리(生理), 풍속, 천석(泉石)으로 바꾼 점도 돋보인다.”라고 연구 결과를 밝혀 황상의 학문적 소양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로의 가치가 있다고 한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황상의 동생 황경은 같이 다산에게 수학한 제자로 알려졌지만 보다 구체적인 연구자료가 없어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구매한 양포일록을 보면 꾸준한 학습과 총서를 남긴 것으로 보아 다산의 가르침을 실천한 제자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겠다. 중 양포일록에 수록된 거가사본이 특히 눈길을 끈다.

    이 양포일록에는 여유당전서에도 수록되어있지 않은 다산의 저술 중 거가사본이 필사되어 있다. 다산의 저서 중 유일본이 아닐까 여겨져 더욱 소중한 자료라 생각된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거가사본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였다.

    주자는 "부드럽고 온순한 것은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근본이고,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 근본이고, 독서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근본이며,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은 집안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근본이다."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집안을 다스리는 네 가지 근본이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내게 옛사람이 남긴 훌륭한 말씀을 적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유배지인 탓에 책은 없지만, 우선 네댓 종의 책에서 명언이나 훌륭한 논설을 가려 뽑아 책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용이 너무 고상하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면서 그냥 버렸다. 참으로 천박하고 저속한 풍속이 가소롭기만 하구나. 내가 소중하게 만든 책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진실로 애통하고 서글픈 일이다. 너희들이 내가 보낸 책 목록을 근거로 삼아 남송의 성리학자인 정자나 주자의 책과 『성리대전』, 『퇴계집』의 언행록, 『율곡집』, 『송명신록』, 『설령』, 『작비암일찬』, 『완위여편』 등과 우리나라 여러 선현들의 기록과 저술에서 차례로 뽑아 서너 권의 책을 만든다면, 또한 한 질의 훌륭한 책이 될 수 있다. 효도와 우애, 자애 그리고 남편은 부드럽고 아내는 순종하며, 일가친척과 화목하게 지내고, 집안의 하인들을 잘 다스리는 일 등은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제가(齊家)'의 근본에 넣어야 한다. 밭 갈고, 길쌈하는 법, 의복과 음식에 관한 가르침과 경계할 일, 농사짓고 가축 기르는 방법 등 전원생활에 관련된 말은 집안을 다스리는 '치가(治家)'의 근본에 넣어야 한다. 뜻을 세워 학문과 독서에 힘을 쏟는 일, 악을 없애고 선으로 나아가는 일, 격물과 궁리에서부터 책을 모으고 보관하거나 베끼거나 기록하는 일, 책을 아끼고 즐기는 일에 대한 말 등은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기가(起家)'의 근본에 넣어야 한다. 

    또한 음덕을 베풀고 분노를 뉘우치고 경계하는 일, 자신의 분수에 만족해하며, 곤란을 겪거나 궁색해져도 굳세게 맞서 나가는 법, 해야 할 일에 제대로 대처하고 온갖 사물을 순리대로 대하는 태도, 하늘의 뜻을 즐기고 자신의 운명을 알아 사사로운 욕심을 막고, 하늘의 이치를 보호하고 지키는 일에 관한 모든 말은 집안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보가(保家)'의 근본에 넣어야만 한다. 이 네 가지의 근본을 모두 합해 『거가사본』이라는 제목을 붙인 다음 책상 위에 놓아두어라. 그리고 항상 잊지 않고 읽는다면, 어찌 몸과 마음에 큰 이로움이 깃들지 않겠느냐? 너희들은 힘써 실천하도록 해라.

    이상의 편지 내용에 따르면 당시 다산은 이 책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몹시 애통해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다산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사라졌다고 애석해한 이 책이 강진에서는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었으며, 제자인 황경에 의해 필사되기까지 한 사실에 비추어보면 강진사람들의 학문에 대한 애착과 책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거가사본의 일부 내용 중 효도와 우애에 대한 글 한 구절 소개하고자 한다.  

    孝(덧말:효)友(덧말:우) 如(덧말:여)飮(덧말:음)食(덧말:식)衣(덧말:의)服(덧말:복), 一(덧말:일)日(덧말:일)不(덧말:부)足(덧말:족), 便(덧말:편)有(덧말:유)性(덧말:성)命(덧말:명)之(덧말:지)夏(덧말:하), 今(덧말:금)人(덧말:인)事(덧말:사)事(덧말:사)要(덧말:요)好(덧말:호), 却(덧말:각)芋(덧말:우)父(덧말:부)子(덧말:자)兄(덧말:형)弟(덧말:제)間(덧말:간), 都(덧말:도)不(덧말:불)加(덧말:가)意(덧말:의), 警(덧말:경)如(덧말:여)樹(덧말:수)木(덧말:목)根(덧말:근)本(덧말:본)己(덧말:기)枯(덧말:고), 雖(덧말:수)剪(덧말:전)綵(덧말:채)爲(덧말:위)花(덧말:화), 能(덧말:능)有(덧말:유)幾(덧말:기)曰(덧말:왈)好(덧말:호)看(덧말:간) 효도와 우애는 음식이나 옷과 같다. 하루라도 넉넉하지 않으면 생명을 걱정하게 된다. 지금 사람들은 사사건건 좋은 것만 찾으면서 부자와 형제 사이에서는 도무지 서로를 생각해주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이미 말라 죽은 나무의 줄기와 뿌리이다. 그 나뭇가지를 자르고 꾸며서 꽃을 만든다고 해도 아름답다고 할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을까?

    이 외에도 부모님 모시기, 노비에 대한 사랑, 공부법, 몸가짐 방법, 말 한마디 행동하나 신중하게 해야 하는 내용 등 이 실려 있다. 이 소중한 유산을 강진군 다산박물관에 기탁해 주시고, 흔쾌히 양도해 주신 황한석님께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 책들은 지금 다산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어 한 번쯤 방문하여 실물을 직접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 저작권자(c)강진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우리신문 news@gjuri.com
    • Facebook Twitter KakaoStory Naver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