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목에서 배우고 느낀 것. - 쉬운 농사는 없다. -

  • 벌씨 5월, 본격적인 농사준비계절이다. ‘할 거 없으면 시골서 농사나 짓지..’ 간혹 이런 얘길 듣는데 정말 농사를 잘못 알고 하는 소리다. 그만큼 농사를 쉽게 생각하고 농사를 경시하는 얘기인 것 같기 때문이다. 

    평생을 시골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부모의 농사일을 도와 나름대로는 반 농사꾼은 된다고 자부했지만 늘 느끼는 것이지만 쉬운 농사는 없다, 

    아니 어려운게 농사다. 농사를 쉽게 보아서는 안된다. 농사는 과학이고 통계의 산물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음력 24절기에 맞춰 농사를 지어온 것만 봐도 그렇다. 

    감자에 재를 묻혀 심은 것을 논리적으로 왜 그래야 하는지 설파하지 못해도 꼭 그렇게 하여 심어야 발아가 잘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실천했다. 

    재의 양잿물 성분이 상처 보호와 부패예방, 칼륨공급으로 수량 증대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학술적으로 정리했더라면 노벨과학상감은 되었을 것이다. 

    농사, 그렇게 쉽게 볼 일이 아니다. 남들이 보기엔 파종하거나 식재만 해놓으면 저절로 자란 것 같지만 주인의 관심과 손길이 가지 않으면 하나도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농사를 지으며 느낀 것은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며 그래서 농사가 어렵고 힘든 것이다.

    5년전 시골 밭에 체리나무 100여 그루를 심었다. 열매가 맺히면 형제, 지인들과 나눠 먹을 수 있겠다는 작은 소망으로 말이다. 

    그러나 6년째 접어든 올해도 체리꽃은 피지 않았다. 

    꽃이 피지 않는다는 건 올해도 체리 맛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교육도 참여하고 벤치마킹도 다녔건만 초보농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이제는 식재 당시의 작은 소망도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한번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미련이 남아 갈아엎을 수도 없어 지난 2월 지인의 체리농장에서 채취해 온 삽수로 4월 초부터 50여 그루를 다른 수종으로 접목했다. 

    나름대로 세운 자구책이기도 했지만 당시엔 가장 좋다는 품종을 비싼 가격으로 구입했으나 몇 년이 지나고 나니 새로운 품종이 나와 선호도에서 밀리기 때문이기도 했다. 

    학창시절 배웠던 기억과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접목 방법을 익혀 실천했다. 접목 유합의 가장 큰 요소는 화합성이다. 

    모든 나무가 접목을 붙인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식물분류학상의 과(科)가 같아야 된다. 본질 즉 과가 같으면 화합이 되지만 과가 다르면 불화합성으로 접목이 되지 않는다. 

    과가 같다 하더라도 시기와 방법에 따라 그 성공 여부도 차이가 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삽수 채취 시기와 접을 붙일 때 부름켜라 불리는 형성층이 맞닿지 않으면 안된다. 

    대목과 접수의 굵기가 다를지라도 형성층의 한쪽 면은 반드시 맞아야 한다. 

    금년 4월은 체리꽃을 구경하지 못하는 대신 접목하는 것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접의 종류는 눈접, 고접, 녹지접 등 다양하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접붙이고자 하는 나무의 수액이 이동하는 시기에 삽수를 도관(導管)에 연결하는 단순한 논리가 접목이다. 

    도관이 연결되지 않으면 수액이 오르지 못해 삽수는 말라 죽는다. 

    대목과 삽수 간의 수액 소통은 마음이 통해야 되는 인간관계와 같은 것이다. 

    사회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소통과 화합이 중요하듯 대목과 접수가 형성층을 통해 수액이 통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접목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소통과 화합이 아닐까 싶다. 

    내친김에 시골집 담장 주변에 식재된 집안의 유실수에도 접목을 시도했다. 

    캠벨포도나무에 샤인머스켓과 머루포도, 루비로망을 접붙이고 빨간 앵두나무에 흰 앵두, 살구나무에 자두, 매실나무에 살구와 자두, 체리나무에 앵두를 접붙였다. 

    한 나무에 자두, 살구, 매실, 체리, 앵두 등 개화와 열매 익는 시기가 다른 바이오체리, 추희자두, 스위트골드, 플럼코트, 토파즈 등의 여러 품종을 접붙여 놓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조금씩 밀려 나오는 새싹 들여다보는 재미도 솔찬하다.

    내후년부터는 살구나무에서 자두가 열리고 자두나무에서 매실이 열릴 것이다. 

    한 나무에서 매화꽃과 앵두꽃 살구꽃이 차례로 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즐겁다. 

    봄에만 열리는 자두인 줄 알았는데 다른 가지에서 가을의 추희자두가 열리면 농사가 어렵다는 편견도 잠시 잊혀질 것 같다. 

    또 다른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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