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다산茶山 제자 청광 선생을 생각하며!

  • 진규동 박사 다산미래원 원장



  • 청광靑光 양광식 선생과의 만남은 2017년 5월 26일, 4년전의 일이다. 다산박물관 다산교육전문관으로 일하게된지 3일째 되는 날로 경세유표 저술 200주년 기념 학술강좌가 강진 다산실학연구소와 다산연구소 주최로 “다산 정약용, 강진에서 새로운 나라를 설계하다‘라는 주제로 강진아트홀에서 열렸다.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이 “경세유표 저술 200주년의 역사적 의미와 강진”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였으며, 서울대 규장각 정호운 교수,  연세대 국학원 김용흠, 다산연구소 김태희 소장,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김선희 교수 등이 주제 발표를 하였다. 

    그리고 종합 논평과 토론으로 이어졌다. 종합 논평과 토론은 인하대 이봉규 교수와 강진문사고전연구소 양광식 소장이 하였다. 바로 이때 나는 청광 양광식 선생의 논평을 들으며 큰 감명을 받았다. 첫 인상이 시골의 허름한 촌로의 모습인 양소장님의 경세유표에 대한 논평은 내가 다녔던 수많은 세미나나 학술대회에서 느낄수 없는 간명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논평이었다. 

    학술대회가 끝나자 마자 나는 그분의 논평자료를 사진으로 찍었다. 그것이 내가 청광 선생님과 인연을 맺게 된 일이다. 이후 나는 양소장님을 찾아 뵙고 박물관에서 나의 역할과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리고 많은 도움을 요청하였다. 다소 황당하다는 느낌을 갖고 계신것도 같았으나 이후 나는 수시로 찾아뵙고 근황과 다산에 대한 이야기를 묻고 또 함께 역사의  현장을 찾기도 하였다.

    특히, 추사 김정희 선생의 아버지 김경로의 유배지, 정약전의 유배지, 완도 관음사지, 정수사지 이야기, 일속산방 탐방 등등 선생님과 역사의 현장을 함께 다니면서 세세하게 들려주신 이야기는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청광 양광식 선생을 만나면서부터 나는 선생이야말로 보석으로 치면 아직 발굴하지 못한 원석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선생은 자신의 이력(학문지)에서도 쓰고 있듯이 1960년부터 강진에서 초등학교 졸업 후 어떤 학적도 없고 졸업장도 없는 무관으로 줄곧 60여년을 다산과 인연을 맺어 학문에만 골몰하였다. 

    선생과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은  것들을 다 여기에 기록 할 수는 없지만 선생은 그야말로 시골의 가난한 청년이었지만, 오직 다산에 대한 관심으로 몇십리나 되는 길을 걸어 다니며 다산의 후손한테 학문을 배우는데만 골몰하였다. 긴나긴 세월 수많은 시련과 고난 속의 행군이었다.

    청광 선생은 1960년부터 후학을 양성해오며 편저한 책이 50권이 넘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다산 전문가들치고 선생을 만나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라고 하였다. 특히 고 노무현 대통령도 국회의원 시절 두번이나 선생과 만남을 가졌다고 하였다. 선생은 강진문화발전과 지식공유에 부부가 일생을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사모님의 역할도 대단하다는 이야기이다. 

    사모님의 이야기를 듣자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을만큼 고생하며 선생을 뒷바라지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부가 그렇게 했으니 오늘날 선생이 계셨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선생께서는 어머니, 아내, 며느리 세가지 역할을 하는 아내에게 잘하라며 당부까지 하신다.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다산의 여유당 전서를 최초로 엮은 위당 정인보 선생의 아들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정양모 선생께서 청광 선생께 쓴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려움을 뜻으로 이겨내고 그 어려운 학문에만 전념하니 갸륵한 일이나, 알면서도 아무 도움이 못되니 안타까울 뿐이요”라며 청광 양광식 선생에 대한 사랑과 애정의 편지를 보낸 것을 보면 선생께서 어려운 가운데서 얼마나 학문에 대한 열정이 강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편지의 사연을 본인이 운영하는 다산TV가 최초 방송을 하였다.

    왜냐면 선생께서 최근에 엮은 “황상 4호암“이라는 책 속에 그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본인께서 다산의 제자 황상을 생각하며 평소에 육필로 쓴 것을 자료로 후학자들이 더욱더 보기 쉽고 연구하기에 편리하도록 정리하는 차원에서 엮은 책으로 10권 한정판인데 그 귀한 책을 다산등불지기 저에게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서 청광 선생께 못다들은 이야기며 감추어진 사실들을 하나 하나 살펴 보면서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현대판 다산 제자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60년 여년 동안 다산을 알기 위한 선생의 노력은 그의 이력 속에 영어학, 도자학, 본초학, 내경학, 목록학, 갑골학, 문자학, 서지학, 서법학, 조자학, 훈고학, 전걱학, 축지학, 인장학, 감정학, 문체학, 다산학, 심성학, 출판학, 논설학, 극작학, 번역학, 퇴고학 등 무려 23개 학문으로 듣지도 못한 학문까지 연구를 하였습니다. 가히 다산 선생께서 600여권의 책을 쓴것과 대비가 된다.

    지금은 다산의 제자 1호였던 황상에 대한 연구와 유적을 발굴하고 흔적을 찾아서 후세들의 역사적 거울로 세우기 위해서 마지막 혼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 황상은 강진 사람으로 추사 김정희는 물론 초의 선사 그리고 다산의 아들들과도 교류 하면서 조선 시대의 문인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현재 그의 유적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황상이 일생을 보냈던 일속산방의 복원을 애타게 기원하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없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하루빨리 일속산방이 복원되고 현대판 다산 제자 청광 선생의 귀한 경험과 지혜가 보석처럼 빛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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