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1956 미술과 독재와 이데올로기

  • 고발과 선전 사이에서



  • 건설자들 : 젊은 시절에 반 추상을 추구했던 레제(1881~1955)는 솔직한 정치적, 사회적 발언에 자극받아 인간 형상으로 되돌아갔다. 이 같은 전환은 특히 거대한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랑, 노랑, 빨강의 삼원색에 기초한 후기 입체파(post-cubist) 회화를 통해 레제는 두껍고 분명한 윤곽선으로 그려진 숙련공, 육체 노동자, 건설 노동자들을 찬양했다.


  • 독재정부는 추상미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영웅의 업적 등 찬양의 의미를 담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등장한 여러 독재정권 아래서 미술은 강력한 선전매체에 적용하면서 포스터 미술과 영화에 치우치게 된다. 멕시코 혁명 이후의 벽화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사례들이 유럽 저 끝까지 퍼져나갔다.
    20세기 초에 표현주의, 미래주의, 절대주의를 낳았던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삼국에서는 1930년대에 유사한 경향이 나타났다. 정부가 공인한 미술은 현실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과 인물을 종종 과장된 수사학으로 묘사했다. 자유로운 표현양식을 추구하는 미술은 어떤 것이라도 잔인하고 반역사적인 검열을 받아야 했고 결국은 금지당했다.
    같은 시기에 국제적으로 퍼진 신입체주의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실주의적 기법을 도입했다. 그 양식은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작품이 지닌 보편적 가치 때문에 공산주의 경향의 미술운동은 이 작품을 필수적인 양식적 준거로 삼았다.
    피카소의 양식을 정치적인 모범으로 삼는 경향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이념적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 한편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공감하는 사실주의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반동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앵포르멜을 포함한 추상 미술 운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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