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문턱, ‘벌초’로 잇는 선조의 얼과 가족 사랑

  • 엄오섭 재경강진군향우(병영면 상고마을 출신)



  • 올해 여름은 유난히 길고 더웠다. 아직 더위가 꺽이지 않았지만 곧 있으면 민족 대명절 한가위, 추석이 다가오고 이때쯤이면 벌초의 계절이 다가온다. 올해 같으면 날이 더워 벌초하는 것도 고역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고향을 찾아 분주히 산소 주변에서 무언가를 정리하는 풍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바로 ‘벌초’이다. 

    벌초는 그저 묘지 주변의 풀을 깎는 단순한 노동을 넘어,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공동체 정신, 그리고 자손의 깊은 효심이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벌초(伐草)는 한자 그대로 ‘풀을 베는 것’을 뜻한다. 벌초의 의미를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찾아 보니 ‘조상의 묘에 자란 풀이나 나무를 베어내고 묘를 깨끗하게 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단순히 여름 한철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이 묘지를 덮기 전에 깨끗하게 다듬어 조상의 묘소를 단정하게 가꾸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묘지 관리란 무엇이란 말이가? 묘는 바로 나를 있게 하는 나의 조상님의 집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의 심성이다. 돌아가신 조상도 살아있는 사람의 최소한의 예의이자, 조상의 안식을 지켜드리는 후손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묘를 묘택(墓宅)또는 음택(陰宅)이라고도 불렀다. 그래서 조상의 묘를 잘 보살피고 돌보는 일은 바로 효행으로 보았다. 묘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바로 불효자로 낙인찍혔다.

    그렇다면 벌초는 언제부터 했는지에 대해서는 그 유래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유교의 보급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다분하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성행으로 화장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유교에서는 관혼상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시제와 묘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즉 유학에는 크게 양명학과 성리학이 있는데, 성리학은 주자에 의해 성립된 학문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보다 더 형식주의가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조상들의 묘를 관리하지 않고 잡풀이 무성하면 불효자라고 욕을 하였다. 원래 벌초는 한식(寒食)이나 추석 성묘 이전에 조상의 묘에 자란 풀이나 나무를 베어 깨끗이 하는 일이다. 대개 백중百中(음력 7월15일) 이후부터 추석 전에 모두 이루어진다. 설과 한식에는 성묘는 하지만, 벌초는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설에는 벨 풀이 없고 한식에는 풀이 막 자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식에는 겨우내 묘에 생긴 구덩이나 부족한 떼(잔디)를 다시 입혀주는 개사초改莎草를 하기도 한다. 개사초를 할 때는 ‘손이 없는 날’(무방수날)을 택일하는데, 한식은 손이 없는날이라고 한다. 

    개사초를 하기 전에는 몇 가지 제물을 마련하여 산신, 토지신, 묘의 주인(조상)에게 먼저 고한 다음 진행하고, 개사초가 끝나면 묘의 주인에게 고하여 평안을 알린다. 개사초 전에 산신과 묘의 주인에게 고한 다음, 개사초가 끝나고 산신과 묘의 주인에게 다시 고하기도 한다. 장례를 치른 이듬해 봄에 떼를 입히기도 한다.

    백중 이후에는 풀의 성장이 멈추기 때문에 추석전에 벌초해 두면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깔끔하게 손질된 묘가 유지된다. 추석에 성묘를 가기 위해 추석 전에는 반드시 벌초해둔다. 그렇지 않으면 보기도 흉하며, 자손이 없는 묘로 여기기도 하였다. 또한 자손이 있음에도 벌초를 하지 않는 행위는 불효로 간주되었다.

    한국인은 죽은 조상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예우하였기에, 조상의 묘를 살피고 돌보는 일은 효행이자 후손들의 책무였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추석 성묘 전 벌초를 중요하게 여겨, 추석 전 한 달은 성묘하는 차로 도로가 붐비는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혹여 벌초할 시간과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대행업체를 이용하여 벌초하기도 한다. 1990년대 초반부터 예초기의 보급과 함께 벌초대행업이 성행하기 시작하여, 더욱 편리하게 벌초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대행업의 성행도 벌초를 하는 풍속이 계속 전승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추석 전에 벌초를 해두지 않으면 큰 불효로 여겼다. 벌초하러 갈 때에는 집안의 여러 친척이 모여 날짜를 정했다. 

    이렇게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고향선영을 찾아 벌초하고 성묘를 하는 것이 우리민족의 전통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예전 할아버지·아버지 세대는 고향을 지키면서 틈날 때마다 선영을 돌보곤 했다. 

    그러나 도외지로 나간 자식들은 자주 고향을 찾을 기회가 쉽지 않은지라 일 년에 한번쯤 추석 전에 날을 잡아 내려와 벌초를 했다. 

    벌초가 고향지킴이인 집안 분들의 몫이였다면, 성묘는 고향을 떠나 있던 자식이 이때쯤 와서 조상에게 예를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하지만 벌초의 의미는 조상에 대한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효의 실천 방식이다. 비록 말 못하는 혼령이라 할지라도, 살아있는 자손들이 정성을 다해 묘소를 돌보는 행위 자체가 조상과 후손을 잇는 끈끈한 유대감을 상징한다. 무덤 주변의 풀을 베면서 자손들은 조상의 존재를 다시금 되새기고, 조상이 있었기에 오늘의 ‘나’가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며 전통의 의미를 간과하기 쉽다. 핵가족화을 넘어 1인 가구 시대가 심화되고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확산되면서 벌초 또한 점차 그 의미가 퇴색되거나, 대행 서비스에 의존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초는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지금의 자신이 있는 것도 선조들의 공간인 선영에서 분출되는 좋은 기가 적잖게 작용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함부로 남의 손을 빌려 벌초를 하면 안 되는 이유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조상에게 감사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 올 추석에는 벌초를 통해 잊고 있던 가치의 의미를 되찾고, 후손들에게도 이 아름다운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도록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벌초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미래를 지혜롭게 준비하는 우리 민족의 현명한 방식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벌초는 묘지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를 배울 기회이기도 하다. 무성한 풀을 정리하며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고,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땅과 산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된다. 

    이는 환경 보호에 대한 의식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명절을 앞두고 행하는 벌초는 단순히 번거로운 의무가 아니다. 이는 선조의 얼을 기리고,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며, 다음 세대에 물려줄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을 가꾸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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